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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하시

미국 탈라하시 정착 이야기 (2) 숨 쉬듯 운전해야 하는 미국

by 한나우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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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ere-now.tistory.com/m/280

미국 탈라하시 정착 이야기 (1) 한국을 떠나기 전, 가족 커트 배우기

우리 가족이 미국 탈라하시에 도착한 것은 2019년 8월 1일. 나름 미준모 포함, 미국과 관련된 카페들도 열심히 출석하며 알아보고 준비한다고 했는데 아쉬운 점은 많았다. 그래도 아주 잘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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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면허를 따는 한국 친구들, 심지어 고등학생 때 운전을 시작하는 미국인들에 비하면 나는 면허를 굉장히 늦게 딴 편이다. 낭군이 첫 차를 구매하고 한 달 만에 큰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뭔가 나를 구성하는 원소 중 일부분이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나? 싶을 정도로 운전에 공포를 느끼던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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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평생 운전을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큰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면허에 도전했다. 그게 뭐라고, 문제집을 열심히 정독하고 우습게도 필기시험만 아무 의미 없게 만점을 받았다. (청주 면허 시험장이었는데. 당시 만점자에게 혜택 진짜 큰 거 있었다. 무려 기념 볼펜을 하나 줬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안 나는 볼펜.

 
정작 첫 실기시험에서 막판 유턴을 잘못하는 바람에 재수를 했다는 건 안 비밀. 몇 년간 장롱면허였던 것도 안 비밀. (일본인들은 장롱면허를 페이퍼 드라이버 ペーパードライバー, 확 줄여서 페드라 ペードラ라고도 부른단다.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던 영화 페드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페드라의 잊지 못할 후반부 해안도로 장면을 떠올리면 뭔가 접점이 없지도 않은 듯.) 
 
https://youtu.be/KYgu2HuNB0I?feature=shared

운전이 무서운 분들은 절대 시청 금지. 페이퍼 드라이버가 절대 따라하면 안 되는 영화 페드라 속 장면

 
 
아이가 하나일 때는 아기띠 하고 버스나 택시도 탈 수 있었으니 그 후로도 크게 운전할 일이 없었는데, 둘째를 낳고 본격적으로 도로주행 연습을 시작했다. 물론 다짜고짜 아이를 태우고 길로 나간 건 아니고 주로 사람이 없을 때, 아이는 태우지 않고 살살 다녔다. 이때 터득한 요령 아닌 요령이 하나 있다면...

필사즉생행생즉사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오자병법에 등장하는, 전쟁터에서 장수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 되시겠다. 영화 명량에도 나오고, 성경에도 비슷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내가 도로주행 연습을 하면서 깨달은 것도 이와 비슷했다. 운전을 하며 살려고 하면, 그러니까 너무 겁을 내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근거가 없진 않지만 확률적으로 희박한) 공포심 때문에 운전 중에 너무 주저하고 겁을 내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사고 나는 것도 각오하고 당당하고 덤덤하게 운전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는 당연한 이야기. 너무 다채로운 상상, 많은 의구심은 운전의 적이니까, 필사즉생행생즉사의 심정으로 망설임을 내려놓고 도로주행을 하다 보니 나도 어느덧 무사고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국 정착 일지에서 운전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땅 넓은 미국, 특히 탈라하시처럼 대중교통이 잘 안 갖춰진 시골 동네에서는 정말 운전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들이나 워싱턴 디씨, 뉴욕 같은 동부 주요 도시들은 워낙 물가가 비싸고 주차도 힘들어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 여기보다는 잘 발달돼 있다)
 
탈라하시에도 버스가 있긴 하다. 심지어 학교 학생증을 제시하면 탑승도 무료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타본 분들 증언에 따르면, 어딘가 노숙자 같은 분들이 주로 이용해서 버스 안 분위기가 꽤 불편하고, 버스가 오는 시간도 한국처럼 일정하지 않으며, 버스 정류장이 한국처럼 촘촘하게 분포돼있지도 않아서 일단 집에서 버스 정류장 가는 것도 일이고, 목적지까지 정확히 제시간에 가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추천하지 않는 상태.
 
결론은 운전은 필요하고, 한 집에서도 여러 명이 하면 더 유리하다는 것. 물론 4인이나 5인 가족이 한 명의 운전자와 한대의 차로 잘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집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니, 그 경우 굳이 여러 대의 차가 필요하진 않다. 다만 나처럼 집에만 있는 걸 답답해하거나, 학교나 다른 기관으로 실어 날라야 할 아이들이 많거나, 장거리 여행을 좋아해서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는 게 필요하다 싶으면 운전여부, 차량 보유수가 미국 삶의 질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니 여력이 된다면 미국에 오기 전, 운전 연습을 하고 오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미국에 와서 연습하면 안 되나요?"
 
당연히 됩니다. 암요. 그런 분들을 종종 뵙기도 했다. 서울 부산 같은 빡빡한 대도시에 비해 탈라하시는 도로도 넓고, 주차 공간도 큼직하고 심지어 평일 다운타운 같은 곳 빼면 웬만한 곳 다 무료다.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즉 FSU나 고등학교 근처, 특히 점심시간 무렵의 피 끓는 청춘, 과격한 운전자들만 피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침착하게 운전을 하는 편이라 초보 운전자에게도 연습 여건이 나쁘지 않다. 한국처럼 수시로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도 거의 없다. (이유가 좀 무섭긴 한데... 잘못 경적을 울렸다간 총 맞을 수도 있어서... 뉴스에 따르면, 누군가 경적을 잘못 울렸다가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상대방 운전자가 경적울린 차를 멈추게 해서 총을 꺼내들었고, 그걸 방어하던 운전자도 총으로 응대다가 상대방을 숨지게 한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다. 그러니 미국에서 경적은 웬만하면 울리지도 말고, 경적소리 들을 일도 하지 말자. 그저 양보, 그저 평화 주행.)
 
미국 시골마을이 운전 연습하기 좋다고 하더라도  1년이든 2년이든 한정된 기간을 머물 분들이라면, 도착하는 순간부터 편하게 운전을 시작하는 것이 여러모로 시간을 절약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집에서 한 사람만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어디 장 한 번 보러 가려고 해도 운전할 줄 아는 상전님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아이가 아플 때 직접 학교로 픽업을 갈 수도 없고, 먼 곳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여할 수 없어 개인 생활의 폭이 줄어드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우버나 리프트처럼 승차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내가 경험이 부족해서 비교는 어렵다. 다만 미국은 차값도, 가솔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정말 급할 때 바로 이용하기엔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차로 달리다 보면 잡생각이며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도 하고.
 

메인 주 아카디아 국립공원, Cadillac Summit 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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