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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이 그리운 밤, 새벽, 아니 아침 / 음악 대장 하현우

by 한나우 2023.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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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만두 빚기, 보드게임, 스터디 과제, 줌수업, 사이언스 페스티벌, 탈라하시 뮤지엄, 슈퍼 마리오 무비 나잇, 튜터링, 교회, 한글학교... 주렁주렁 열린 일정에 싹 다 갈아 넣었는데 신기하게도 월요일 아침까지 힘이 넘친다. 자동차 배터리처럼 움직여야 충전되는 나란 사람, 괴벽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하여 한밤중 시작된 예전 노래 요즘 노래 널뛰며 듣기 - 몇 번이나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양희은, 악뮤, 손성훈, 최용준, 여행스케치, 이무진. 그리고 하필 하현우가 부른 마왕의 명곡 민물장어의 꿈까지 실로 오랜만에 듣는 바람에... 잠은 다 잤다. 

https://youtu.be/fhTodipG378?feature=shared 


하현우를 처음 본 건 KBS 라디오 대본을 쓰던 시절. 홍대 작은 클럽이었나 아님 쌈지 락? 민트 페스티벌? 셋 다였던가? 어딘가에 분명 일기가 남아 있을 텐데 찾기 쉽지 않다. 하여간 국카스텐 초기 활동 시절부터 남달랐던 음악대장님 목소리에 듣자마자 푹 빠져서 방방 뛰며 공연들을 즐기고 음악을 찾아 듣던 기억은 생생하다. 특히 자주 들었던 곡은 국카스텐의 싱크홀. (싸이월드 도토리로 내돈내산, 아니 내도토리내산 BGM이었다. 푸하하) 그때 그 무대가 아래 동영상에 올라온 공연 중 하나일 수 있으려나. 네, 아닙니다
 
https://youtu.be/CqehJe_zRXo?feature=shared 


뮤직 페스티벌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면 관객들을 발 구르고 춤추고 난리 치게 만들던 바로 그 노래다. 국카스텐 무대를 보고 노래를 듣는 순간  '아, 목소리 진짜 엄청나다. 요즘 말로(?) 큰 거 왔다!' 감탄했던, 낭군 왈 공연예술요정은 이제 미국 시골 마을 토끼 네 마리 양육자가 되어 유튜브로 추억팔이나 하는 중. 생각난 김에 진짜 토끼 코코빈과 토끼 같은 세 아이들한테 기상 음악으로 싱크홀을 들려줘볼까 싶다. 이제 2시간 정도 후면 학교 보낼 시간인데. 시끄럽다고 난리 치며 이불 뒤집어쓰진 말아 줘... 
 
아 잠시 얘기가 옆길로 - 하고 싶었던 말은, 하현우가 부른 민물 장어의 꿈이 싸구려 이어폰을 뚫고 정말 심금을 울렸다는 것.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싶게. 음악대장님이 노래를 소름 끼치게 잘하기도 했지만 가사 한 단어 한 단어 왜 그렇게 콕콕 와서 박히던지, 전에도 팬심으로 좋아했던 노래지만 이젠 공감되고 서러워 엉엉 울 정도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진짜 마왕, 그 재능과 혜안의 끝은 어디였을까. 워낙 명곡이라 아예 나무위키 항목이 따로 있다. 
 
https://namu.wiki/w/%EB%AF%BC%EB%AC%BC%EC%9E%A5%EC%96%B4%EC%9D%98%20%EA%BF%88

민물장어의 꿈 - 나무위키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하는 근데 이게 운명의 소리인지 신의 소리인지 뭐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귀로 듣는 소리가

namu.wiki


이런 노래를 만들어놓고 '내 장례식장에 퍼질 곡'이라 했다는 것도 진짜 마왕답다.

방송국에 있을 때는 안타깝게도 어떤 인연도 닿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수시로 듣던 그의 노래, 라디오 방송, 그리고 이제는 유튜브의 온갖 기록들이 공기처럼 떠돌다 와서 머물다 또 흘러가고 돌아온다. 창작자가 겪는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은 덕분에 마왕은 이토록 큰 의미로 남아 나에게서, 음악대장에게서,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히지 않고 계속 사는 모양이다.

 
몇 년 전, 마왕을 주제로 한 이야기를 구상했다. 몇 번이나 고쳐 쓰다가 결국 마무리하지는 못한 긴 글. 다시 꺼내서 완성해야겠다. 그리움이 좀 덜해지기를, 아니 더 깊어지기를 바라며. 마침 때는 마왕이 떠난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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