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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 허리케인 실시간 상황 / 재난 선배의 가르침

by 한나우 202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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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허리케인의 경로 가장자리에 걸친 탈라하시 상황. 다행히 우려했던 만큼 바람이나 비가 심하지 않다. 별일 없어도 수시로 전기가 끊기는 동네인데 여전히 전기도 잘 들어오고.

북쪽 남쪽 숲 속 마을에 간혹 전기가 나간 곳이 있고, I-10 일부 구간에 나무가 쓰러져 정체가 있다는 뉴스 정도가 내가 파악한 전부.

우리 옆집 앞엔 제법 큰 나무가 있어서 혹시 큰 가지가 부러져 차를 손상시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역시나 주인 아저씨가 본인의 차를 나무가 없는 도로변 탁 트인 곳으로 옮겨두셨다. 큰 나무가 많은 플로리다에서 나무는 때로 흉기로 변하기 때문에 나무 관리 업체를 불러 큰 나무를 미리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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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평소 썬더스톰 정도의 비. 강한 바람이 걱정돼서 창문마다 가구를 덧대고 쿠션을 놓고 대비를 해두었는데 가끔 들리는 돌풍 소리 말고는 큰 문제가 없다. 지대가 높아 물도 차오르지 않는다. 참 감사한 일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웃으며 창문을 지키고 있던 인형들


어제 낮, 셰리가 줄 것이 있다며 우리 집을 찾아왔다. 허리케인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 비상용 바구니 같은 거라도 대여해 주시려는 걸까? 아니면 사재기로 제일 먼저 동나는 물이나 휴지? 그런 거라면 우리 집에 충분히 많으니 돌려드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셰리가 건넨 것은 뜻밖에 직접 구운 브라우니!

"밖에서 기차 경적소리처럼 큰 바람 소리가 나고 창문이 세게 흔들려 아이들이 겁에 질렸을 때, 이 브라우니를 꺼내서 함께 먹고 두려움을 잊도록 해. 그때까진 이게 찬장에 있다는 건 비밀이야."

아이들의 공포룰 달래주려는 셰리의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아름다워서, 브라우니를 먹지 않아도 한껏 배부르고 행복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40년 넘게 플로리다에 살면서 허리케인을 옃 번이나 겪어본 그녀의 가르침 하나 더.

"대피 명령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도망갈 필요는 없어. 가면 어디로 가려고? 물론 여기 남아 전기가 끊기면 엄청나게 덥고 불편하겠지.  하지만 너는 비참해지는 걸 배울 거야(being miserable). 그리고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에 감사해하는 법도 배우게 될 거야(being grateful). 우린 모두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인생 선배, 재난 선배(?)의 조언 덕분에 허리케인이 다가오는 공포를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허리케인이 너무 얌전히 지나가서, 저 브라우니는 어느 시점에 함께 먹어야 최대의 효과를 낼까 고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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