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반, 학교 앞 녹두거리에는 보드게임 열풍이 잠시 불었다. 과는 달랐지만 학교 선배 중에 보드게임을 진짜 좋아하는 분들이 (아마도 자매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페이퍼 이야기 카페라는 보드게임 카페를 열었는데 그 인기가 제법 돼서 인근에 분점까지 낼 정도였다.
나 역시 보드게임을 좋아해서 손님으로 자주 찾아가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한동안 일까지 하게 됐다. 마침 학교 신문사 선배 한 분이 이야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시력 교정 수술을 받고 직사광선 금지령(?)이 내려 졸지에 뱀파이어 생활을 하게 된 내가 옳다구나 싶은 마음에 페이퍼 이야기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돈도 벌고 게임도 하고. 손님들에게 게임 설명을 하는 건 긴장되고 쉽지만은 않았지만 일은 정말 재밌었고, 지금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보드게임의 B자도 잊고 살즈음, 이곳에서 보드게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가족을 만났다. 우리처럼 같은 시기에 가족 구성원이 박사를 시작했고, 아이들 나이대도 비슷해서 좀 더 일찍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쉬운 가족. 아주 우연히 그분들이 보드게임에 진심인 것을 알게 되어 많은 게임을 새롭게 배우고, 종종 만나서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자기들보다 부모들이 더 열심히 집중해 보드게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또 게임해?" 하며 놀릴 정도로.
페이퍼 이야기를 열었던 사람들, 귀여운 앞치마를 두르고 일도 하고 게임도 했던 직원들, 그 장소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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